소설예수, 작가의 말

구름이 가득 낀 날, 높은 산 위에 올라가거나 비행기를 타고 하늘에 오르면 드문드문 구름 위에 솟은 산봉우리만 보입니다. 그렇다고 눈에 보이는 산봉우리만 세상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산 아래 골짜기도 더듬고, 비탈도 오르내리고, 커다란 호숫가도 맴도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이 글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 약속이 4년 동안에 걸쳐 이 글을 쓰도록 저를 이끌었습니다. 글을 쓰기 시작한 4년 전 어느 날, 우르르 몰려든 손주들, 만 7살, 6살, 5살짜리 손녀들과 3살 된 손자가 한 입으로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컴퓨터로 뭐하세요?"
"너희들이 크면 읽을 글을 쓴다."
"왜요?"
"약속이니까...."
"누구하고 무슨 약속했어요?"
"그분하고.... 내가 만난 그 분이 나보고 그분 뜻을 깨달았으면 그렇게 살아가라고 말씀하셨는데..., 내가 그렇게 살 수 없었거든? 그래서 '제가 글을 쓰는 것으로 눈감아 주십시오' 그렇게 부탁했지."
"그래서 허락받으셨어요?"
"그냥 웃으시더라."
"그분 어디에 사세요?"
"2천 년 전에 멀리 저쪽에 사셨던 분이다."
"아하!"
손주들은 더 묻지 않고 '아하! 아하!'하면서 고개만 끄떡였습니다. 약속이니까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2천 년 전 저쪽'에 살았던 분을 만났다는 말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일이 실제 있으리라고 믿는 나이였으니까요.

2005년부터 자료를 모으고 그 자료에 빠져 세월을 보내다가, 2016년 5월, 저에게 의미 있는 어느 날부터 실제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 글에 나오는 2천 년 전의 그 땅과 그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많이 달랐습니다.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그들이 살아가던 시대의 문제를 함께 아파하고, 그들의 호소를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의 언어로 번역해야 했습니다. 그때 거기 살던 사람의 눈으로 보아야 했습니다. 왜냐면, 지금 우리는 깊은 산에서 시작한 강물이 흘러내린 하구에 살기 때문입니다.
지금 시대에 부富를 중요하게 여기는 만큼 그들은 명예名譽와 수치羞恥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모든 말과 행동이 명예와 관련이 있었습다. 지금 개인의 발전과 성취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처럼, 그때는 공동체의 안위와 전통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개인주의는 공동체에 해로운 것으로 보았습니다. '나'라는 존재는 공동체에 함몰되어 있었습니다.
그 사회는 앞으로 걸어갈 미래에 희망을 두는 오늘날과 달리, 지난 역사와와 전통에서 그들이 살가는 체제의 정통성을 찾는 과거지향적 사회였습니다. 정통성을 가졌다는 억압체제, 제국체를 당연한 것으로 수용했습니다. 사람은 이미 정해진 대로 태어났다고 믿었습니다. 고귀한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고귀하다고 믿었습니다.그 구분의 선을 넘는 사람은 사회를 위태롭게 하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그런 사람은 제거해야 했습니다.
2천 년 전에 일어났던 일이 오늘날 아무 의미 없는, 다만 과거의 일이었다면 제가 그 일을 더듬을 이유가 없습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붙잡고 살아가던 문제들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문제라서 이 글을 썼습니다.우리가 2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그때 거기 살았더라도, 그분이 2천 년 후에 지금 여기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간다고 해도 똑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생각을 풀어 우선 1,2권을 이번에 먼저 출간합니다. 2020년 연말까지 3, 4권,2021년에 5,6,7권을 출간할 예정입니다.
누구나 그 결말을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를 쓰는 이유는 그것이 바로 인류가 안고 살아가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했단다는 기술에는 모두 동의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왜?'라는 질문 앞에 서면, 대답하는 사람의 인생관과 철학, 사상에 따라 다른 대답이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왜?'라는 질문에 대해 오래전에 주어졌던 명확한 대답 대신, 저와 함께 각자의 대답을 찾으러 떠나시기를 권합니다.
이 글을 쓰면서 이야기 전개나 배경 인물에 대해 의견을 나눌 때 눈을 반짝이며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주고 북돋워준 가족과 주위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특히 첫 원고와 두 번째 원고를 끝까지 꼼꼼하게 읽고 일일이 검토하며 확인해준 아내가 고맙습니다.
두서없이 산만한 원고를 들고 나남출판을 찾아갔을 때 한번 해보자면서 손을 잡아 주고, 이 책이 출판될 수 있도록 이끌어준 조상호 회장, 방순영 편집장, 신윤섭 이사, 이한솔 편집자와 나남 편집부 모든 분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처음 이런 글을 쓰겠다고 상의했을 때 용기를 주었던 형과 외사촌 동생이 고맙습니다. 제 글이 쉽게 동의할 수 없는 내용일 텐데도 불구하고 참고할 만한 서적을 추천해주신 분, 역사적 예수Historical Jesus에 눈뜨고 리처드 호슬리Richard Horsley의 신학을 접하도록 인도해주신 분, 생명과 평화운동에 동참하자고 이끌어주신 분, 그리고 제게 마음을 열어주신 고마운 목사님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손주들이 이제 여섯 명이 됐고, 훗날 이 책을 꼭 읽어보겠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 아이들에게 이 책을 남겨줄 수 있어 기쁩니다. 


윤석철

이 글은 <소설예수> 1권에 실린 작가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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