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자는 분

 

싸우자는 분

 

변명(辯明), 해명(解明), 석명(釋明). 그 어떤 단어도 적합하지 않습니다. 며칠 망설이다가 꼭 무어라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아 이 글을 씁니다.

“<소설 예수>(나남출판사)를 썼습니다.”

눈을 반짝이면서 그분은 제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습니다.

이 놈 봐라!’

분명 그런 표정이었습니다.

“7권짜리 소설입니다.”

그렇게 쓸 말이 많던가요?”

훅 느낌이 들어왔습니다.

갈릴리에서 태어나고 사람들이 얼마나 어렵게 살아가는지 눈으로 보고, 자기 스스로 겪으면서 살았던 예수 얘기입니다. 그의 삶은 십자가 처형을 당해 매달려 있는 상태로 끝납니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그 네 복음서 말고 더 쓸 말이 있었단 말입니까?”

그리스도라고 불리기 전의 예수, 사도 바울의 데살로니가 전서나 갈라디아서가 기록되기 이전의 예수, 그의 삶과 가르침과 아픔을 그렸습니다.”

그리스도로 불리기 전이라고요? 그분은 누가 무어라 부르기 전부터 그리스도였고, 하느님의 아들이었고, 하느님이었어요!”

가족행사나 친구 모임에서 결코 입에 올리면 안 되는 두가지가 종교와 정치 얘기랍니다. 그분이 하도 상냥하고 싹싹하게 자기 사업을 재미있게 설명을 해서 제 마음이 스르르 풀렸나 봅니다. ‘작가 윤석철이라는 명함도 건넸기 때문에 저도 하는 일을 약간 설명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제 책 소개를 했던 모양입니다.

책을 읽어보지도 않은 사람, ‘예수이름 앞에 소설이라는 말을 붙인 것만으로도 벌써 거부감을 보이기 시작하더니 조금 얘기가 더 진행되자마자 마침내 싸우자는 표정으로 변했습니다.




<소설 예수>는 기독교를 공격하기 위해 쓴 책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만난 예수, 그의 삶을 들여다보았더니 너무 슬프고 안됐고, 그의 걸음이 안타깝고, 그가 처형된 지 20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현실을 생각하며 썼습니다.

그래서 더 불경(不敬)스러운 모양입니다. 그는 3단 논법으로 저를 정죄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이고, 그분 자신이 성자(聖子) 하느님이십니다.

예수님이 하느님이라는 말은 진리입니다.

진리를 거부하면 바로 사탄(Satan)입니다.”

꼼짝없이 사탄이 됐습니다. ()그리스도라고 불려도 할 말이 없는 사람이 됐습니다.

 

좋은 얼굴로, 부드러운 미소를 띤 채 제 얘기를 들어주고, 제 책을 읽었던 독자들 중에 얼마나 많은 분들이 속으로 불편했을 지 때 늦게 깨달았습니다.

네가 왜 하필 이런 책을 썼냐?”

정색을 하고 저에게 물었던 정치외교학과 대학동기의 말도 새삼 떠 오릅니다. 무슨 뜻으로 그렇게 물었는지 알게 됐습니다. 작품으로 읽기보다는 기독교 신앙의 눈으로 책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리라 믿습니다. 제 삶의 궤적을 꿰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너무 뜻밖인 책이지요.

 

물러설 수 없습니다. 2000년 동안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예수가 하려던 말과 가르침의 참 뜻은 사라졌고, 그가 꿈꾸었던 세상은 한 번도 이뤄진 적이 없습니다. 예수를 여전히 십자가에 매달아 놓은 채 은혜와 축복을 구하는 현실이 평범하게 살던 제 앞길을 가로 막습니다.

소설을 썼는데, 신학책처럼 읽힌다.”

가까운 분들이 들려주었던 평을 기억합니다. 어느 분은 예수전이라고 제 책 이름까지 바꿔 부릅니다. 소설이란 개연성(蓋然性)이 있는 허구(虛構)’라고 정의한다면, 저는 1세기에 살았던 예수의 삶과 가르침을 소설로 복원해 냈다고 자부합니다. 분명 그러했음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이제 기회가 되는 대로 제 책에 담은 얘기를 풀어 내려고 합니다. 2000년 전 예수가 살았던 그 땅에서 벌어진 전쟁으로 몇 만명이 목숨을 잃고 울부짖으며 쓰러집니다. 독한 눈으로 총을 겨누고 포탄을 떨어뜨리는 사람들이 있고, 전쟁을 멈추라는 인류보편적 요구를 외면하는 제국이 세계평화의 수호자처럼 버티고 서 있습니다.

예수가 그렸던 새 세상, 그가 하느님 나라라고 불렀던 그 세상을 기독교 신앙으로만 풀어내는 일에 동의할 수 없어서 쓴 책이었기에 차곡차곡 설명하려고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몇 번의 기회에 당돌하기 짝이 없는 제 생각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예수를 기독교가 독점하지 마세요!”

예수를 저수지에 가두지 마세요. 물은 아래로 흘러가야 합니다.”

 

202415() 오후 6시부터 매 금요일 같은 시간에 대전 선화동에 있는 향토서점 <계룡문고>에서 <예수 만나기> 12회에 걸쳐 세미나를 엽니다.

책을 읽고 공감하시는 분들을 모십니다.

<소설 예수>라는 책 제목을 보고 도전(挑戰) 받았다고 생각하시는 분도 오십시오. 신약성서에 포함된 기록 이전의 예수, 사도 바울의 서신들과 마가복음 마태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기록 이전의 예수를 만나고 대화하실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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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소설 예수가 또하나의 에수전인 것을 부인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주어진 대로 살 수 없는, 그것이 2천년의 종교전통일지라도, 사람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신이라면 외줄타기로 건너올 수 있는 사람만을 사랑하고 구원하겠다고 하지는 않을 것이라 봅니다.
    소설 예수를 의미 있는 작업으로 지지하는 제 이유입니다.
    널리 많은 사람과 나누기를 바라는 저자의 용맹은 책을 출간하기로 하면서부터의 마음이겠지요.
    의견이 다르다고 배척하는 세태에 마음을 잘 지키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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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작가님의 기독교와 예수님에 대한 장시간에 걸친 자료 고증과 수집을 통해 용기있게 목소리 내어 주심에 한국 기독교와 종교계가 새롭게 거듭날 수 있다는 희망을 봅니다. 수고 많으셨고 큰 응원을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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