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왜 문제가 되었는가?

 

예수는 왜 문제가 되었는가?

미국 노스 캐롤라이나 대학의 바트 에만(Bart D. Ehrman) 교수는 신입생을 맞아 첫 강의를 할 때마다 물었답니다.

예수의 성(Last Name)이 무엇인가요?”

그러면 꽤 많은 학생들이 이렇게 대답하더랍니다.  

그리스도입니다.”

어려서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한 단어처럼 부르며 컸으니 그럴 만도 합니다.

기독교는 예수를 그리스도(‘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의 히브리어메시아 Messiah. ‘Christos’는 메시아의 그리스어 번역)라고 고백한 사람들이 이룬 공동체였습니다.

  

저는 그동안 2000년 전에 살았던 예수라는 역사적 인물을 탐구했습니다. 그러다가 한가지 질문과 마주하게 됐습니다. 그것은 물이 낮은 곳을 찾아 아래로 흐르듯 아주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라는 호칭으로 처음 부른 사람들은 무슨 의미로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는지 궁금했고,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세상에 알려진 문서를 기준으로 따지자면 예수에 대한 첫 기록물은 그가 십자가에 매달려 처형을 당한 지 20년쯤 후에 바울(Paul)이 보낸 편지였습니다. 편지들은 예수에 대해 아주 놀라운 얘기를 담고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아들

메시아(그리스도)’

주님(Lord)’

각각 다른 문화적 역사적 뿌리를 가진 몇 가지 호칭이 나타나더니 결국 하나로 합쳐졌습니다. 그리고 나사렛 사람 예수의 호칭이 되었습니다.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기독교인은 하느님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그를 부릅니다.  

예루살렘성 밖에 있는 어느 언덕에서 벌거벗긴 채 십자가에 매달려 고통을 받다가 숨을 거둔 예수, 가장 끔찍하고 공포스럽고 저주받은 죽음을 당한 예수가 어찌 주님으로 하느님의 아들로 그리고 그리스도로 불릴 수 있었을까? 십자가 처형 이후 20여년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선생이 체포되자마자 무서워 뿔뿔이 흩어져 달아났던 제자들이 도대체 무슨 일을 겪었기에 예수를 그리스도, 주님,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부르면서 다시 일어설 수 있었을까?

무슨 그 일이 정말 궁금했습니다.




예수에 대한 바울의 첫 기록 이후 20여년이 지나자 예수에 관한 복음서(Gospels. Good News about Jesus)가 나타났습니다. 예수에 대한 전기(傳記)가 아니라 당시 사람들이 이해한 신의 섭리와 세상을 당시의 언어로 신앙고백한 문서였습니다. 수수께끼처럼 숨어 있는 핵심 단어는 부활(Resurrection)’이었습니다. 부활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소생(resuscitation)과 다릅니다.

부활은 승천과 재림의 한 과정이었습니다.

부활한 예수는 하느님에 의해 높이 들려 하늘에 올라 영광을 받고, 세상 마지막 날에 심판자로 재림한다

놀라운 고백입니다. 그런데, 예수가 처형당한 지 아무리 빨라야 60년 후에 기록됐다고 믿어지는 요한복음서는 더욱 놀라운 고백을 담고 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고, 그 말씀이 하느님과 함께 하면서 세상을 지었다. 그가 땅에 내려와 육신이 되었다가 다시 하늘로 돌아갔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세상보다 먼저 있었던(先在. pre-existence) 말씀(Logos)이 성육신(Incarnation)했다는 고백이었습니다. 언젠가 이 블로그 글을 통해 살펴보았듯, 시간이 흐르면서 예수의 존재가 점점 더 높아지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처음에는 부활을 통해 하느님의 아들로 간주됐다던 예수(예수 처형 후 20여년, 바울의 서신)가 요단강에서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을 때 하느님의 아들이라 불렸습니다(예수 처형 후 40여년, 마가복음). 그러더니 태어나면서부터 하느님의 아들이었다고 고백하다가(예수 처형 후 50여년, 마태복음) 드디어 세상이 창조되기 이전부터 있었던 말씀’(예수 처형 후 60~80여년, 요한복음)으로 신격화했습니다. 예수가 그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며 살았고 무엇을 가르쳤다는 사실 보다 그를 따르는 사람들의 고백이 예수의 정체성을 정의했습니다.  

신학자들 중에는 이런 과정을 역사적 실존 인물이었던 예수(Historical Jesus)를 그리스도(메시아)가 대체했다고 표현합니다. 기독교 교리 속에 역사적 예수가 갇힌 셈입니다.

기독교는 당당하게 외칩니다.

기독교는 세상 모든 개울물과 큰 냇물과 강물이 하나로 모여 바다에 이른 종교

예수는 물이 처음 솟아나온 깊은 산속 옹달샘이며 세상 모든 물을 그 가슴에 받아들인 바다. 바로 알파요 오메가, 처음이며 끝이다.’

 

저는 제도화(Institutionalized) 된 종교 속에서 만나는 예수가 아니라 교회를 떠나서도, 기독교를 떠나서도, 여전히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예수를 찾고 싶었습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해주고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일을 얘기해주는 선생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세상 끝날의 심판과 처벌과 선택받은 사람들만 구원받는 약속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는 비전(Vision)을 애기하고 싶었습니다.

예수는 우리(for us)를 위해 살았다고 굳게 믿는 기독교의 대안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오로지 믿는 자 우리 (we),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사람들만의 우리라는 울타리를 넘고 싶었습니다. 세상을 살며 울고 웃고, 사람들과 함께 굶기도 하고 먹고 마시기도 했던 예수, 그의 삶과 가르침의 결과가 십자가일 수밖에 없었던 예수를 독자들이 만나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에 의해 가려졌던 역사적 실존 인물 예수 얘기, <소설 예수>를 썼습니다.

그는 우리 모두(for all)를 위해 살았다.’

제가 <소설 예수>에서 써 내려간 예수 얘기입니다.

앞으로 1주일 후, 7월 말에 5~7권이 출간되면 전 7권의 <소설 예수>가 드디어 끝을 맺습니다. 처음 책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때로부터 따지면 17년이 걸렸고,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20165월 이후 62개월만에 하나의 얘기를 끝냅니다. 글을 쓰는 중에 만난 많은 분들에게서 힘을 얻었습니다. 비록 몸은 기독교라는 틀 안에 아직 머물러 있지만 교리에 따른 그리스도가 아니라 예수를 직접 만나려고 애쓰는 분들을 만날 수 있어 기뻤습니다

2000년전 거기 살았던 예수를 지금 여기에서 만나시도록 모든 분들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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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윤석철作家님.
    수고많으셨어요.
    고맙습니다.
    작가의 사상과 고뇌의 글..
    잘 읽었습니다.
    작가님이 예수살기에
    직접 올려주시기를 바랍니다.
    5~7권은 교보에 나오면,
    구입해 읽겠습니다.
    기나긴 집필 과정에...
    갈채와
    응원,박수를 보내드립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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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감사합니다.
    한현실 선생님의 지속적 성원에 큰 힘을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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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기대됩니다. 희망이 되는 물줄기가 되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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