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베들레헴?
어떤 베들레헴?
“사람이 어느 지방, 어떤 가문, 누구의 자식으로 태어난 것이 무에 그리 중요하냐?”
지금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그런 생각으로 삽니다. 그런 것을 꼬치꼬치 따져 묻는 사람이라면 케케묵은 고리짝 냄새가 나는 사람이라고 분명 고개를 흔들 겁니다.
그런데, 2000년 전, 예수가 태어나고 살던 시대에는 지금 우리가 피식 웃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그 문제가 죽고 사는 것보다 더 큰 일이었습니다. ‘거룩(Holly)’과 관계되는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거룩은 여러가지 기준을 들이대서 나누는 일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생명처럼 애써 지키던 토라(Torah: 하느님의 가르침)에 ‘내가 거룩한 것같이 너희도 거룩하라’고 하느님의 명령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거룩은 ‘하느님의 뜻에 합당하도록 나눠 구분했다’는 뜻입니다.
거룩을 땅에 적용하면 더러운 땅으로 이방(異邦) 나라들이 있습니다. 이방은 더럽고 이스라엘은 거룩하다고 나눕니다. 거룩한 이스라엘 안에서도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이 다른 지방이나 도시보다 더 거룩하고, 예루살렘에서는 성전이 있는 곳이 더 거룩하고, 성전에서는 이스라엘의 뜰이 더 거룩하고, 이스라엘의 뜰보다 제사장의 뜰, 그리고 성소가 더 거룩하고, 성소 안에서는 지성소(Holly of hollies)가 가장 거룩한 곳이라고 구분합니다. 말하자면 지성소를 중심으로 삼아 그 밖으로 거룩으로부터 멀어지는 원이 끝없이 그려지는 세상입니다.
거룩을 시간에 적용하면 거룩한 안식일이 있고 평일이 있습니다. 세상을 처음 지은 하느님이 천지창조의 일을 마치고 제7일째 되는 날은 쉬었다고 기록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야했습니다.
거룩한 정도를 기준으로 모든 것을 나누다 보니 경계가 정해집니다. 그 경계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할 사람, 그리고 경계를 넘어 거룩의 위로 아래로 드나들 수 있는 사람도 각각 정해져 있습니다.
민주주의 체제 아래에서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사람에게 적용한 거룩의 등급을 보면 대제사장을 비롯한 제사장 계급이 가장 거룩하고 그 다음은 이스라엘 사람이 이방인보다 거룩합니다. 거룩하다는 이스라엘 사람 중에도 깨끗한 사람과 더러운 사람의 구별이 있습니다. 언제나 성전 안에서 일하는 사람, 성전과 조금이라도 더 가까운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거룩했습니다. 가장 낮은 계층은 거지나 창녀나 도적 떼나 더러운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자기 땅이 없어서 몸으로 손과 발로 벌어 먹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은 거지나 창녀보다 조금 나은, 사회 계층 밑에서부터 2번째 계층이었습니다. 목수나 석수가 여기에 해당하고 예수는 바로 이런 계급 출신이었습니다. 결코 그 위 계층으로 올라갈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처럼 땅과 때와 사람과 물건과 하는 일에 따라 거룩한 것과 거룩하지 않은 것의 구분이 정해져 있고, 거룩의 그 구분은 사람이 맘대로 넘어갈 수도 없는 하느님의 명령이었습니다.
목수가 (또는 목수 아들이) 목수라는 직업을 버리고 선생이 되어 사람을 가르친다고 사람을 모은다면, 병을 고쳐준다고 여기저기 돌아 다닌다면, 그는 바로 하느님이 정해준 구분을 넘나드는 사람, 세상의 위 아래를 뒤집는 사람으로 법(토라)에 따라 비난 받거나 처벌 받아야 합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직업을 이어 받아 평생 그 일을 하고 살아야 하는 것이 법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21세기의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 즉 예수의 출생과 출신이 그 때는 중요하게 생각됐습니다. 갈릴리가 유대지방보다 덜 거룩하고, 유대왕국을 세운 다윗 왕가의 후손보다 갈릴리 가난한 목수는 비할 수 없을 만큼 아래 계층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거룩은 고사하고 더러운 일을 하는 사람과 마찬가지였습니다. 여기저기 일거리를 찾아 떠돌아다녀야 하는 직업이었으니까요. 당연히 예수를 좀 더 거룩한 집안 출신, 거룩한 땅 출신으로 끌어 옮기는 일이 필요했습니다.
“언제 어디에서 어떤 가문의 사람으로 태어났는가?”
기독교인들이 <신약성서>라고 부르는 경전에 포함된 4개의 복음서 중 제일 먼저 나온 <마가복음>에는 아예 예수 출생 이야기가 없습니다. 그후 10여년 ~ 20여년 후에 나온 <마태복음>, <누가복음>에서부터 예수 출생에 관한 얘기들이 아주 상세하게 삽입되었습니다. 성령이 동정녀童貞女에게 임해서 애기가 잉태했다는 얘기, 이상한 별이 나타나서 동방의 현인들을 예수가 출생한 마구간까지 이끌었다는 얘기가 기록됐습니다. 천사가 등장하고 천사들의 찬양이 하늘에 울려 퍼지며 하늘과 땅이 ‘세상을 구원할 이’의 탄생을 기뻐합니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는 예수의 족보도 등장합니다. 하나는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에 이르고, 다른 하나는 하느님이 지은 첫사람 아담까지 이릅니다. 그리고, 하느님이 가장 사랑했고,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강력한 나라를 건설했다는 다윗왕의 족보와 예수를 연결합니다. 다윗왕이 태어났던 곳, 유대지방 예루살렘 남쪽으로 10여km 떨어진 베들레헴이라는 마을에서 예수가 다윗왕의 후손으로 태어났다고 기록됐습니다.
베들레헴은 원래 ‘빵 굽는 집’이라는 뜻입니다. 마을마다 빵을 잘 굽는 집이 하나쯤은 있을 법하고, 부근에서 빵 잘 굽기로 제일 유명한 사람이 사는 마을이 있으면 아마 베들레헴이라고 불렀을 겁니다. 다윗왕이 태어났다는 예루살렘 부근의 베들레헴도 그런 마을이었을 겁니다.
복음서에 기록된 대로라면 갈릴리 지방 나사렛 마을에 살던 요셉과 그 약혼녀 마리아가 유대지방 베들레헴에 가서 아기 예수를 낳았습니다. 왜 그 먼 곳에 가서 아기를 낳았을까요? 복음서는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로마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천하에 호구조사를 명령했다. 요셉은 호구조사에 따르기 위해 마리아를 데리고 고향 베들레헴으로 갔다. 바로 구레뇨가 시리아 총독으로 있을 때였다”
요셉이 고향에 갔는데, 친척이 하나도 없는지 여인숙에 묵어야 했습니다. 어떤 마을에 갔는데 친척이나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면 그 시대에는 참 수치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요셉은 여인숙에서도 방을 못 구해 마구간에 머물다가 마리아가 아기를 출산을 했다고 기록됐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호구조사가 실제로는 AD 6년에 실시됐습니다. 헤롯왕이 죽기 얼마전에 예수가 태어났다면 BC5/BC4 겨울이었을 것입니다. 호구조사가 있었던 AD 6년이면 예수는 이미 10살이나 되었을 때입니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유대에만 베들레헴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런데, 예수가 자란 갈릴리 나사렛 마을 가까운 곳에도 ‘갈릴리의 베들레헴’이 있습니다. 나사렛 북서쪽 10km 떨어진 곳에 아주 오래된 마을입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정복한 이후, 스블른 지파에게 배분된 땅입니다(여호수아 19:15). 기록으로만 따지자면 ‘갈릴리의 베들레헴’이 ‘유대의 베들레헴(다윗왕이 태어난 곳)’보다 200년 앞서 등장 합니다.
이제 3가지 서로 다른 가능성이 있습니다.
첫째, 대부분의 기독교인이 믿듯, 호구조사 때문에 요셉과 마리아가 유대지방 베들레헴에 가서 아기 예수를 낳았다 (마태복음, 누가복음)
둘째, 요즈음 신학자들의 주장처럼 예수는 갈릴리 지방 나사렛에서 태어났다. 다만 다윗의 자손이라고 주장하기 위해 유대지방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것처럼 복음서 저자들이 기록했다.
셋째, 예수는 갈릴리의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
<소설 예수>에서 저는 이렇게 구성했습니다.
제가 소설 속에서 갈릴리 베들레헴에서 예수가 출생했다고 말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나이 13살 정도에 (그 때의 결혼 적령기) 결혼하기 전에 임신을 했습니다. 만일 요셉이 아이 아버지라고 나서지 않았더라면 마리아는 부정한 여인이라고 당장 돌에 맞아 죽었을 것입니다. ‘성령으로 잉태했다’는 참람한 말을 어찌 입에 올릴 수 있겠습니까? 전능하신 하느님이 시골마을 가난한 처녀의 몸을 빌어 구세주를 태어나게 했다는 말은 당시 어느 누구도 받아들일 수 없는 신성모독이 분명했습니다. 그래서 소설에서는 ‘갈릴리 베들레헴’에 살던 요셉이 나서서 임신한 마리아를 10km 떨어진 자기 마을로 데려갑니다.
유대의 베들레헴이 아니라 갈릴리의 베들레헴으로 마리아를 데려갔다고 설정한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나사렛에서 남쪽 유대 베들레헴으로 가려면 언덕 마을을 내려가 이즈르엘 계곡(계곡이 워낙 넓어 들판이라고도 불렸습니다.)을 지나 요단강 쪽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늦가을부터 우기가 시작되기 때문에 이즈르엘 들판은 습지가 되어 남자들이라도 남북으로 가로질러 여행을 하지 않습니다. 임신한 마리아와 함께, 이즈르엘 벌판을 지나 요단강 지구대地溝帶로 내려가 강을 따라 걸었다고요?
그 뿐만 아니라 여리고에 도착한 다음 다시 예루살렘 남쪽 10km 떨어진 유대의 베들레헴까지 산길로 이틀은 올라가야 합니다. 나사렛에서부터 따지자면 대략 200여 km에 이르는 먼 거리입니다. 나귀를 태웠든 두발로 걸었든 임신한 여인을 데리고 열흘 가까이 500리나 걸어 고향마을을 찾아갔다는 것을 여러분은 상상할 수 있습니까?
호구조사는 사람의 숫자와 그가 가지고 있는 토지를 조사하는 Census였습니다. 호구조사에 반대하여 AD 6년에 가말라의 유다와 바리새인 사독이 조세저항운동을 일으켰습니다. 로마가 명령한 호구조사는 세금을 효과적으로 걷기 위한 명령이었기 때문입니다.
아직 결혼도 하지 않고 단지 정혼한 사이였다는 요셉은 호구조사를 위해 고향마을(유대의 베들레헴)에 마리아를 데리고 내려갈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갈릴리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세금을 내도 갈릴리 분봉왕 헤롯 안티파스에게 내고, 안티파스가 로마황제에게 바치는 구조였습니다. 자기가 살고 있는 곳에서 사람 숫자대로 인두세人頭稅를 내고, 소유한 토지가 있으면 땅 넓이에 따라, 그리고 지목地目에 따라 세금을 내면 되었습니다. 설령 요셉이 유다지파 다윗가문의 후손이라고 해도, 언제 떠났는지 모를 유대 베들레헴에 가서 호구조사에 따라 신고할 일이 아닙니다.
만일 그곳에 땅 한 뙈기라도 있었다면 유대지방 사람이 갈릴리까지 올라와 하루벌이 삯꾼으로 목수 석수 일을 하며 살아갈 이유가 없습니다. 농사지을 땅을 갖지 못한 최하층 사람들이 겨우 손으로 벌어먹고 사는 직업이 목수요 석수였고 요셉의 직업이 그러했습니다.
<소설 예수>에서는 나사렛에 살던 마리아가 임신을 했고, 요셉이 나타나서 베들레헴으로 그녀를 데려가 출산한 다음 다시 나사렛에 돌아와 함께 사는 것으로 했습니다. 요셉은 예수가 자기 아들이라고 끊임없이 나사렛 마을 사람들을 설득합니다. 요셉을 보아 그냥 그러려니 넘어가주는 사람도 있고, 끝끝내 예수의 출생에 대해 의혹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는 나사렛 마을에서 완전히 받아들여진 것도 아니고, 완전히 내쳐진 것도 아닌 사람으로 자랍니다.
토라에 속하는 <신명기>에 다음과 같은 명령이 기록돼 있습니다.
“사생아는 그 10대 후손까지 이스라엘의 모임에 끼워주지 말라!”
그 사람 뿐만 아니고 그 후손까지 이스라엘 공동체에 낄 수 없었습니다. 소설 속에서 안식일 아침, 마을 회당에서 회당장과 동네사람들이 예수를 나사렛에서 추방했던 이유입니다. 그의 출생에 따른 의혹을 말끔하게 해소하지 못했던 결과입니다.
예수가 어렸을 적부터 겪었던 일, 동네 사람들 중에는 아예 눈 앞에 서 있는 예수를 없는 사람처럼 무시하고 그의 동생 야고보에게만 말을 걸었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선 예수가 멋쩍게 발끝으로 땅을 끄적끄적하는 광경을 생각하실 수 있습니까? 예수는 그렇게 컸습니다.
복음서에 예수 어린시절 얘기가 나오지 않는 이유를 저는 그렇게 해석했습니다.
사실 기독교는 많은 전제前提 위에 하나씩 레고(Lego) 블록을 쌓고 끼워 맞춘 것과 같습니다. 이래서 저래야 하고 저래서 이래야 합니다. 성경이라고 부른 기록들 중, 무엇은 믿고 무엇은 현대 사회에 맞지 않으니 제쳐 놓아도 된다면 유럽의 많은 도시에 있는 성당과 교회가 그러하듯 마침내 한국에서도 기독교는 텅 빈 건물을 공허하게 울리는 소리가 될 것입니다.
저는 소설을 통해 묻습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메시아)라고 고백하고 믿고 따르는 기독교인이든 전혀 관심 없는 사람이든, 21세기 한국 사회의 한 축을 담당하는 그리스도교(기독교)에 대해 눈 감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가 다윗왕의 후손으로 유대의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지 않았어도, 성령으로 동정녀童貞女에게 잉태되지 않았어도, 물 위를 걷지 않았어도, 빵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명을 먹이지 못했어도, 갈릴리 호수의 풍랑을 가라앉히지 못했어도, 못 걷는 사람을 일으켜 세우지 못했고 죽은 사람을 살리지 못했어도, 그 분을 따르겠습니까? 장애자나 병자를 고친 일로 그 분의 한 없는 사랑이 드러났다고 말하렵니까? 고쳐지지 못한 병자나 장애를 가진 사람들, 헤어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허덕이는 사람들은 예수가 고쳐줄 때까지는 하느님의 사랑 밖에 내던져져 있었습니까?”
“예수는 기독교가, 교회가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그런 분이 아닙니다. 그분이 제시했던 길에 다시 눈을 돌리면 우리가 얼마나 멀리 그 분으로부터 멀어졌는지 알 겁니다. 그분을 믿는다면, 그분의 가르침을 따라야 하고, 그건 신앙이나 사랑이라는 추상명사가 아니고 몸으로 이루는 움직임, 곧 동사動詞입니다.”
‘예수 따름’은 ‘예수 살기’가 되어야 하고, 그래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윤리倫理이어야 합니다. 그분이 들려주는 말을 저는 듣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예전 말로 하자면 윤리의 왕국이고, 21세기 용어로 말하자면 윤리의 세상이오.”
예수가 누구였든, 어떻게 살았든, 지금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무슨 말을 하든, 나와는 아무 상관없다고 말하고 싶어도, 2000년 전에 지구 반대편에 살았던 그 ‘사람’의 외침이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관한 이야기라면 그냥 귀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를 그리스도로 믿든 아니든,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기독교인이든 무슬림이든 불교도이든, 세상을 나누는 틀에 가두지 말고 마음을 열고 얘기를 나눠보자고 청합니다.
예수는 우리가 누구인지 묻지 않습니다.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이루자고 2000년의 시공時空을 넘어 지금 우리에게 그저 손 내밀 뿐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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